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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521 작성일: 작성자: 박치흥 / 조회 1,037
[퍼온글] "인문학 유행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 그다음은?"

“인문학 유행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 그다음은?”

via people.clas.ufl.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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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철 교수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김학철 교수의 가라치기>

편집자 주

‘가라치기’는 ‘가르치다’의 옛말인 ‘가라치다’에서 왔다. 혹자는 ‘가라치다’가 땅을 ‘갈고’, 무엇인가를 ‘치는’(기르는), 곧 ‘갈다’와 ‘치다’를 합한 말이라고 한다. 이를 받아들이면 ‘가라치기’는 야만을 문명의 상태로 바꾸고 미성숙을 계몽하는 활동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김학철 교수의 가라치기’는 허황되게 문명과 계몽을 자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혼돈의 땅을 갈아 갈피를 잡으려고 애쓰며, 작은 생명이라도 길러내려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작은 노력이다.

인문학, 그 다음 상품

기업과 인문학

우리나라에서 인문학 강연자를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기업이다. 기업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기업에서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플의 높은 기업적 성과가 부분적으로 인문적 사유에 있다고 하니 기업은 그 사유를 사고자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인문학에서 기업 경영의 ‘지혜’를 바라는 데로 나아갔다. 인문학은 사업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인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즉각적이고 매력적인 결과를 제공해야 한다고 요청받는다. 그러나 인문학적 사유의 본질은 사유의 결과, 그리고 그것의 즉각적 기능성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읽고 그 요약이 필요하다면 인터넷 검색을 하면 된다. 그리고 그 글의 뜻을 이해했다면 좋은 일이다. 여기까지는 수능에서 출제되는 것이고, 그것은 외울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의 본령은 거기에서 더 나아간 곳에 있다. 인문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구체적인 일상에서 어떻게 보편적 명제를 끌어냈는지의 사유 과정을 비판적으로 통찰하고 파악하는 데에 목표가 있다. 이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 방식 혹은 사유 형식을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체화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 영화 <카핑 베토벤>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영화에서 베토벤이 카피스트를 시험하고자 일부러 음을 ‘다르게’ 적자 카피스트가 그것을 교정한다. 베토벤이 왜 그렇게 했냐고 불같이 성질을 내며 따지자 카피스트는 ‘(이탈리아의) 다른 작곡가라면 그렇게 했겠지만 베토벤이라면 악보와는 다르게 적었을 것’이라고 답한다. 베토벤은 그 카피스트가 자신을 ‘알고’ 있다고 느꼈다. 인문학 공부는 이와 같이 체화를 핵심으로 하는데, 그것은 장자(莊子) 외편(外篇) 중 천도편(天道篇)이 소개하는 일화에 잘 나타나 있다.

제환공이 어전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윤편이라는 수레바퀴 깎는 사람이 뜰에서 일을 하다가 연장을 놓고 감히 그리고 성큼 어전에 올라간다. 그러고는 책을 읽는 제환공에게 누구의 글을 읽느냐고 묻는다. 성인(聖人)의 글이라고 답하자, 윤편은 재차 그 성인이 살아있냐고 되묻는다. 성인은 돌아가신지 오래라는 환공의 답변에 윤편은 그렇다면 그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노동자가 책을 읽는 어전에 올라가서 그런 말을 하자 환공은 이렇게 무례하게 묻는 연유를 따지며 적당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죽음을 맞게 되리라 호통을 친다. 윤편은 자신의 수레바퀴 깎는 기술이 구불능언(口不能言), 곧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자식에게 전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니 옛 성인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적힌 글이라는 게 찌꺼기 이상 될 리가 없다고 단언한다. 윤편의 기술이나 ‘옛 성인’들의 인문학이나 체화와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말로 요약하여 그 뜻을 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인풋과 아웃풋의 즉각적 결과로 나타나기란 쉽지가 않다.

인문학 다음 상품, 명상

이제 곧 인문학 얘기는 더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인문학 열풍이 줄어들 것인데, 그 이유는 인문학자들이 기업에 효과적으로 저항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인문학’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기업 이득에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문학 다음에 기업이 사야 할 아주 매력적인 상품이 시장에 이미 나와 있기도 하다.

내가 확실히 예상하건대 이제 기업이 소비할 다음 상품은 ‘종교’다. 물론 기존의 종교를 뜻하는 것은 아니고, 세계의 종교 전통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명상’ 혹은 ‘홀로 있는 성찰의 시간’이다. 우리나라 회사에는 이제 명상을 위한 매트가 깔린 방이 생길 것이다. 그 방에서 사원들은 눈을 감고 코에서 배꼽 아래까지 자신의 들숨과 날숨을 느끼며 머리를 비운다. 인도 풍의 명상 음악 혹은 뉴에이지 음악이 깔리고 사원들은 내적 평화를 얻고 나서 보다 안정적인 심리 및 정서 상태를 획득한다.

회사는 명상 프로그램에 직원들이 참석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할 것이다. 아닐 것 같다고? 골드만 삭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 포드 등은 이미 이것을 하고 있다. 이제는 구글을 그만두었지만 차드 멍 탄(Chade-Meng Tan)은 세계 최고 기업의 지원 속에서 신경과학자, 심리학자들의 과학적 연구와 선승 등의 종교적 권위를 빌어 ‘감성지능 강화 프로그램’을 구글 사원들에게 소개하고 참여하게 하였다. 검색으로 유명해진 기업답게 이 프로그램 이름은 ‘당신의 내면을 검색하라’(Search Inside Yourself)다. 7주간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자아 존중감, 감정 조절, 대인관계 능력 등을 향상시켰다고 보고되었다.

기업이 보기에 인문학이 어줍지 않은 저항과 모호함과 비과학적 통찰의 범벅이라면 ‘명상’은 심리학 및 신경과학이라는 과학적 확실성과 선승이라는 종교적 아우라를 갖춘, 기업이 구매하기에 딱 좋은 상품이다. 명상 프로그램은 생산성을 높이고 직장 내 관계의 질을 높여 스트레스를 줄이며 차별의 시시함 따위에 개의치 않는 사원들을 만들어줄 것이다. 이게 다음 기업 강연 및 프로그램 관련 블루오션인데, 입맛은 정말 쓰다. 인문학 열풍 속 인문학의 본질이 흐트러지고 마침내 인문학이 시시한 무엇이 되어가는 것처럼, 명상이 그렇게 구매되기 시작하면 언제가 그곳에도 폐광(廢鑛) 딱지가 붙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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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기 입문 첫달을 보내며(수련체험담) 퍼옴. [3]

이혜리 201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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