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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492 작성일: 작성자: 成安 박현석 / 조회 1,839
응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 15기 이진오 교수님 (국제신문 14.12.04일자)

[인문학 칼럼] 응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이진오

고립된 자에게 약은 소유·지배·폭력·명예

진정한 부자란 수많은 사람·사물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


저간에 거세게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은 세상이 그만큼 타락해 있다는 증거이다. 세상이 살 만하다면 굳이 인문학을 찾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를 못하니 인문학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정신과 의사의 궁극적 바람은 정신과 의사가 더는 필요하지 않은 세상일 것이다. 그처럼, 인문학의 궁극적 목표는 인문학을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이다. 

인문학의 기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그런데, '나'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생각해 문제가 되는 과잉된 자의식은 세상과 나의 분리로부터 발생한다. 세상과 내가 분리되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분리는 대립을 낳고, 대립은 갈등은 낳고, 갈등은 고통을 낳고, 고통은 회의를 낳고, 회의는 질문을 낳는다. 

나와 세계와의 분리는 고립을 의미한다. 고립은 세계와의 분리에서 나아가 내부분열을 낳는다. 내부분열은 다시 자기소외(자기부정)를 낳는다. 예를 들어 보자. 돈만 추구하는 세태가 싫으면 나와 세계가 분리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돈을 추구하는 나와 돈을 혐오하는 내가 공존하면 내부 분열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분열된 모습의 내가 싫어지면 자기 부정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분리와 분열과 부정으로 이어지면 '왜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문학 열풍은 바로 지금이 어느 때보다도 각자의 고독이 심한 시대임을 의미한다.

나와 세계가 잘 연결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이 같은 질문이 일어나지를 않는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사춘기 시절에는 물론 이 물음이 일시적으로 필요하다. 건강한 자아의 형성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도 이런 질문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세계와 나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못해 분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할 때 '나는 누구인가'를 아무리 탐구해도 해결되지는 않는다. 단지 나와 세계의 충분한 연결을 통해 이 물음이 더 는 필요하지 않게 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다. 문제의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해소하는 방식인 셈이다. 

인간을 위시해서 세상 만물은 저마다 표정이 있고 손짓이 있으며, 심지어는 외침이 있다. 인간은 자기 관심사에 눈이 멀고 귀가 멀어 이러한 표정과 손짓과 외침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살아간다. 단지 자기가 관심이 있는 극소수의 존재에게만 눈길을 줄 뿐이다. 그러니, 그 의식의 폭이 말할 수 없이 좁으며, 그 좁은 폭 속에서도 나와 세계는 분리되고 대립되어 갈등적 상황으로 살아간다. 

고립된 자, 즉 외로운 자에게 필요한 약은 소유와 지배와 폭력과 명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약들은 잠시의 위안이 될 뿐,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허무감을 이기기 위해 다시 더 큰 소유와 지배와 폭력과 명예를 필요로 한다. 그 끝은 허무요 허탈이다. 세계적인 부호나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연예인이 자살을 하는 것은 이 같은 원리이다. 

진정한 부자는 자기 주변의 수많은 사람과 사물의 표정과 손짓과 외침을 볼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자이다. 그리고 거기에 응답할 줄 아는 자이다. 보아 주고 들어 주는 자체가 하나의 응답이다. 그 응답은 상대에게 존재의 의미로 다가가며, 그 존재를 또한 변화시킨다. 이것이 조응의 원리이며, 상호참여의 원리이다. 

어떤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단지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또 어떤 스님은 노래하였다. "달 솟은 천 산은 고요하고 / 봄 돌아오자 만 그루 나무 피어나네 / 사람이 능히 이 뜻을 알아낸다면 / 팔만대장경을 읽는 것보다 나으리." 이런 분들은 능히 만물의 표정과 손짓을 보고 응답할 줄 아는 이었으리라. 응답에는 인간을 인간 이상의 존재로 승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을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은 개개인의 집착이나 욕망만이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위험천만한 오래된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운행하겠다든가, 정치인이 공약해 준 일들이 전혀 진척이 없다거나, 주요한 이권들을 수도권이 다 챙겨가고 지방은 방치하거나, 지역 문화단체의 장을 지역민의 소망과는 전혀 다르게 임명을 강행한다든가, 건강에 해로운 위조식품이 대량 유통된다거나, 교육당국이 끝없이 비교육적인 정책들만 내놓거나 하는 일들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세상과의 분리감을 심하게 겪게 된다. 그런 일이 부지기수이다. 

시민들의 표정과 손짓은 응답 없는 외침으로 허공에 흩어지고 말 것인가? 이런 와중에 사람답게, 인간답게 살아갈 지혜란 무엇인가? 서로가 서로에게 응답이 되어 주는 삶을 한번 꿈꾸어 보자.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

[국제신문 2014.12.04일자 본지 31면]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41204.2203120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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