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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113 작성일: 작성자: 김영복 / 조회 3,243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2/2

 

 

시간이 지나면서 이전에는 신의 섭리로만 설명되던 수수께끼들에 대해 과학과 철학이 점점 더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하게 되자, 이성적인 사람들은 점점 더 신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과학은 과학시대에 신의 존재를 부적절해 보이게 만든 두 가지 혁명적 이론을 내놓았다.


 

 

첫번째 이론은 1830년에 출간된 찰스 라이에 Chales Lyell의 지질학 원리 Pronciple of Geology에서 나타났다. 라이엘의 연구는 자연지형은 신의 손이 아니라, 지질학적 힘에 의하여 만들어 졌으며, 지구의 나이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로부터 29년 뒤에 종의 기원이 출판되었는데, 생명체가 신의 창조적 에너지에 의하여 순식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백만년에 걸친 생물학적 적응을 통해 진화했다는 다윈의 혁명적인 이론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신비적으로 발견된 실체의 가능성에  대해 주류 과학이 두 팔을 벌리고 환영했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과학의 권위는 물질적 현실이 가장 높은 형태의 실체이며, 우주를 이루고 있는 물리적, 물질적 재료보다 더 실제적인 것은 없다는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견지에서 보더라도, 물질적 현실의 본질은 상식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애매하다. 아인슈타인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1938, 그는 물리적 세계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합리적 물질주의자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만큼 확고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믿음을 피력했다.


 

 

물리적 개념은 사람의 마음이 자유롭게 만들어 낸 것이며, 설사 그렇게 보인다 하더라도 외부 세계에 의해 유일하게 결정되지는 않는다. 실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우리는 닫힌 뚜껑 속에 들어 있는 시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과 비슷하다. 그는  시계의 문자판과 움직이는 바늘을 볼 수는 있지만, 뚜껑을 열어 볼 수는 없다. 만약 그가 뛰어난 천재성을 지녔다면, 자신이 관찰하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떤 메커니즘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자신이 생각한 것이 관찰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지는 결코 확신할 수 없을 것이며, 그러한 비교가, 어떤 의미를 지질지 그 가능성조차 상상할 수 없다----Gary Zukav 1979


 

 

과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실제 세계에 대한 은유적인 그림이며, 비록 그 그림은 그럴듯해 보이긴 해도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이 경우에 과학은 존재의 수수께기들을 해결하고 삶의 도전들에 대처하도록 도와주는. 설명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일종의 신화이다.


 

 

이것은 설사 물질적 현실이 실제로 가장 높은 단계의 실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비록 과학이 객관적으로 검증된 진리에 집착한다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은 순수하게 객관적인 관찰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지각은 본질상 주관적이고, 아인슈타인의 시계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뇌의 주관성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외부에 실제로 바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모든 지식은 은유적이다. 주위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감각 지각조차도 뇌가 만들어 낸 설명적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은 신화적 성격을 띠고 있고, 모든 신화의 신념 체계와 마찬가지로 다음의 기본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재하는 모든 것은 과학 검증을 통해 검정할 수 있으며, 따라서 과학으로 검증할 수 없는 것은 실제로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체계가 무엇이 진실인지를 가려내는 유일한 조정자라고 보는 이러한 종류의 가정은 과학과 종교를 양립할 수 없게 만든다. 만약 절대적 일체 상태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과학과 종교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각자의 기본 가정을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일수록 양자는 서로 더욱 깊이 충돌하게 되고, 궁극적인 실체로부터 더 멀리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각자의 직관이 지닌 은유적인 성격을 이해한다면, 양자의 불일치를 화해시킬 수 있고, 각자 더욱 강력하고 초월적인 실재가 될 수 있다.

 


 

만약 절대적 일체 상태가 실재한다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온갖 인격화된 신은 단지 은유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루이스의 시에서 말한 것처럼, 은유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신의 은유가 영속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무조건적으로 실재하고 있는 것으로 경험되는 무엇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 초월의 신경생물학적 뿌리는 절대적 일체 상태가 아주 그럴듯한, 심지어는 매우 유력한 가능성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의  이론이 제시하는 모든 놀라운 사실(신화는 생물학적 충동에 의하여 만들어지며, 의식儀式은 직관적으로 일체 상태를 촉발시키도록 되어 있으며, 결국 신비주의자들은 반드시 미친 것은 아니며, 모든 종교는 똑 같은 영적 나무의 다른 가지라는 것 등) 중에서도 궁극적인 일체상태를  합리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흥미를 끈다.


 

 

절대적 일체 상태의 실재성은 더 높은 차원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존재에는 단순히 물질적인 존재를 넘어서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뒷받침해준다.


 

 

우리의 마음은, 고통이 사라지고 모든 욕망이 잠잠해지는, 이 깊은 실체의 직관, 일체라는 이 완전한 느낌에 끌린다. 우리의 뇌가 지금처럼 만들어져 있다면, 우리의 마음이 더 깊은 실체를 느낄 수 있는 한, 영성은 계속 사람의 경험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리고 신은, 우리가 그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든지 간에,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pp244-247 앤드류  누버그 외 지음/ 충호 옮김 한울림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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