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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65 작성일: 작성자: 김영복 / 조회 1,973
남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여기며 사랑할까요?

 

밤 깊은데 소쩍새 웁니다. <중략>나는 요즈음 참으로 애절한 편지 한통을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남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부인이 한지에다 직접 붓으로 써서 남편의 수의에 넣어준 편지입니다.

 

원이 아버지께 사뢰어 올립니다. 당신이 늘 나에게 말씀하시되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은 먼저 가십니까? 나하고 자식은 누가 거두어 어떻게 살라하고 다 던지고 당신만 먼저 가십니까? 당신이 나를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며, 나는 당신을 향해 마음을 어찌 가졌습니까? 매양 당신에게 내가 말씀드리기를 한데 누워서 이 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요? 남도 우리와 같을까요?’하며 당신에게 말씀드리더니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아니하여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십니까? 당신을 여의고 아무래도 내가 살 힘이 없어 수이 당신에게 가고저 하니 나를 데리고 가소.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 세상에서는 잊을 수가 없어 아무래도 서러운 뜻이 끝이 없으니, 이 내 마음을 어디에다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며 살까요? 이 내 편지를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서 말씀하소. 내가 꿈에 이 보신 말씀 자세히 듣고저 하여 이리 써서 넣습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씀하소. 당신, 내가 밴 자식 나거든 보고 말씀하실 일을 두고 그리 가시되 밴 자식 나거든 누구를 아버지라 하십니까? 아무리한들 내 마음 같을까요? 이런 천지 아득한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리 가 계실 뿐이거니와 아무리한들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요? 그지그지 가이 없어 다 못써서 대강만 적습니다. 이 나의 편지를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서 보이시고 자세히 말씀하소. 나는 꿈에서 당신을 보리라 믿고 있습니다.몰래 보이소서. 하도 그지그지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원이 아버지께 보내는 이 편지는 이응태 공 부인의 언간이라 불리는 편지입니다.이 편지의 대상이 된 남편 이응태 공은 서른 한 살에 세상을 떴습니다.서른한 살이면 한창 젊은 나이입니다. 조선 중기 때 사람들이니까 이 부부는 십여년 이상을 함께 살았을 것입니다. 살면서 서로를 정말로 아끼고 사랑했던 부부입니다. 남편은 평상시에도 늘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 곁에 누워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같을까요?’하고 묻곤 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평생토록 사랑하며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는 말, 아내가 남편에게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하고 묻는 이런 소리를 우리는 얼마나 갖고 싶어했던가요.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하는 이런 사랑을 우리는 얼마나 갈망했던가요. 아니 한번만이라도 곁에 누운 아내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 사는 게 행복이 아닐 수 있을까요.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아내들은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던가요.

 

이 남편은 형 이몽태가 부채에 써서 관에 넣어 준 한시에 의하면 곧음은 대쪽 같았고(汝直如竹)/ 깨끗함은 백지장같았던(汝潔如紙) 사람입니다.곧고 깨끗하게 사는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 절절한 한글 편지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글을 배우고 식견이 있었던 아내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하는 남편, 이 아름다운 부부의 사랑은 그러나 삼십 대 초반에 끝났습니다.

 

남편은 병이 들었고 아내는 병든 남편을 살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남편의 병세가 날로 나빠지지 자기 머리카락을 뽑아 삼줄기와 섞어 남편이 신을 미투리를 삼기도 했습니다.여인에게 머리털은 아름다움의 상징입니다. 엣날이고 지금이고 여자들은 머리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얼마나 신경을 씁니까. 머리를 아름답게 매만지는 일로 여자의 하루가 시작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머리털로 남편의 신을 삼을 때는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사랑하는 남편이 죽게 된다면  매만지고 가꾸어야 할 머리칼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남편은 부인의 그런 정성에도 일어 나지 못하였고 서른한 살의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아내의 뱃속에 유복자를 남긴 채, 살아 있을 때 남편은 아내의 배를 어루만지며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것 있다.” 하였습니다.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해 주고 싶은 말 깨우쳐 주고 싶은 가르침 그런 것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뱃속에 있는 아이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아내는 그렇게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거지요?하면서 울고 있습니다.

 

이 슬픔을 어이 말로 다할수있겠습니까. 아내는 남편의 장례를 모시는 그 경황없는 중에 붓을 들어 못다한 말들을 화선지에 적어 내려 갔겠지요. 편지를 한줄 쓰고 눈믈이 앞을 가려 한참을 멈추었다가 다시 흔들리는 붓으로 또 한줄을 써내려 가고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래도 내가 살 힘이 없어 수이 당신에게 가고저 하니 나를 데리고 가소.” 이렇게 써놓고 젊은 아내는 반 방에서 혼자 얼마나 울었을까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 세상에서는 잊을 수가 없어 아무래도 서러운 뜻이 끝이 없으니….” 이렇게 편지를 쓰는 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흘려 내렸을까요. 그러다 이 내 마음을 어디에다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며 살까요?” 하고 써놓고는 다음 글을 못쓰고 차가운 방바닥에 엎드려 통곡하였을겁니다. 어린 자식과 뱃속에 든 유복자를 데리고 혼자 살아가야 할 남은 날들을 생각하며 청상의 아내는 삼백예순 뼈마디가 저리고 아팠을 겁니다. “그지그지 가이 없어 다 못써서 대강만 적는그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그 편지를 경상도 안동 땅의 남자들이 주관하는 엄격한 장례 절차의 과정중에 넣는 아내의 슬픈 손을 생각합니다. 그 관이 깊은 흙 속에 묻히는 걸 바라보며 땅을 치고 울던 여인을 생각합니다. 어린 나이에 첫사랑으로 만나 서로 아끼고 어여삐 여기며 애틋하게 사랑하다 황망하게 남편을 보내고 혼자 남아 꿈속에서나마 남편을 만나고자 불을 끄고 눕던 수많은 밤을 생각합니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낳으며 울었을 아픈 시간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412년이 지난 1998, 안동시정상동 택지 개발지구내 한 무덤에서 이 편지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못다한 사랑, 풀지 못한 한이 사백여년을 꼼짝않고 웅크리고 있다가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얼마나 한이 깊었으면 글자 한자 상하지 않고 사백년을 그대로 있었을까요. 이 편지를 미쳐 못 읽고, 마음을 다 전할 수 없었던 부부의 영혼이 그 사이에 태어나고 또 태어나 아프고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 사랑하였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다시 부부가 되어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편이 뒤에 남아 아내에게 눈물로 편지를 쓰고 그렇게 업연을 갚았기를 바랍니다. 아니 두 사람이 부부가 되기도 하고 가족이 되기도 하여 머리가 세도록 어여삐 여기고 사랑하는 세월이 있었기를 바랍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도종환의 산에서 보내는 편지)-도종환  pp319-327 ㈜좋은생각사람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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