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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351 작성일: 작성자: 김봉건 / 조회 1,602
빛의 도시

 

빛의 도시

 

 

 

캘커타를 '기쁨의 도시'(시티 오브 조이)라고 하는 반면에, 갠지스 강변의 바라나시는 수천 년 동안 시티 오브 라이트, 곧 '빛의 도시'라고 불려 왔다. 그것은 오늘날에는 아무래도 과장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바라나시는 시도 때도 없이 전기가 나가는 정전의 도시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미로로 소문난 바라나시 뒷골목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대낮에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곳이라, 전기가 나가자 어디가 어딘지 통 분간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암흑의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그날 오후 나는 인도의 시인 카비르에 대해 전문가적인 식견을 자랑하는 한 인도인 교수를 만나러 근처 힌두 대학에 갔었다. 그런데 그만 그와 의견이 엇갈려, 나 혼자서 열변을 토하다가 밤이 늦어지고 말았다.

인도의 여인숙들은 대부분 밤 열 시면 현관문을 잠가버리기 때문에 서둘러 돌아가야만 했다. 자전거 릭샤를 내리자마자 지름길을 택해 좁은 뒷골목으로 뛰어든 것이 잘못이었다. 골목에 접어들자마자 전기가 나가 버린 것이다.

며칠 전 시장에서 산 작은 손전등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빛의 반사 범위가 너무 작아 겨우 손전등의 위치만 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더 밝게 하려고 아래위로 흔들자, 손전등은 유리고 뭐고 완전 분해가 되어 길바닥에 흩어졌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미로는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20분 넘게 이리 돌고 저리 돌아도 아는 길이 나타나지 않았다. 목적지를 찾기는커녕 온 길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빛의 도시에서 길을 잃고 만 것이다.

늦은 시각이라 지나가는 행인이 한 사람도 없었다. 한참을 더 좌회전, 우회전을 하고 났을 때, 다행히 골목 끝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어른거렸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소똥에 미끄러지는 둥 마는 둥하면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골목 어귀 어느 집 담 밑에 등불 하나가 깜박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검은 물체 하나가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늙은 사두였다. 그는 오렌지색 누더기 승복을 걸치고, 추위를 막을 양으로 그 위에 또 한 겹의 누더기천을 두르고 있었다.

나를 보자 사두는 반갑게 손짓을 했다.

"이리 와 앉으시오."

나는 엉거주춤 등불 앞에 가서 앉았다. 등불에 비친 사두의 모습은 지저분한 수도승 그 자체였다. 때가 낀 콧등, 노끈처럼 꼬인 머리, 긴 손톱, 골동품에 가까운 서너 개의 염주 목걸이, 그리고 나이를 말해 주듯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살들 속에서 두 눈동자만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그가 내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중이오?"

나는 여인숙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말하고, 길을 잃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가 없노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이 미로에서 빠져 나갈 출구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사두는 등불 위로 몸을 숙여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속삭이듯 묻는 것이었다.

"당신은 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갑작스런 질문에 내가 머뭇거리자, 그가 말했다.

"신은 이 골목 안에도 있고, 바라나시 전체에도 있고, 이 누더기 안에도 있소."

그가 갑자기 신에 대해 말하는 의도를 몰라 나는 희미한 불빛 속에서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로서는 신을 발견하는 것보다 지금 곧 골목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내가 큰길로 가는 방향을 되물으려는 찰라, 사두가 또다시 내게로 얼굴을 기울이며 물었다.

"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그가 구부러진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가슴팍과 내 가슴팍, 그리고 몇 군데의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은 빛이오. 그 빛은 내 안에도 있고, 당신 안에도 있소. 이 허공 중에도 있고, 그 빛은 언제까지나 우리 안에서 빛날 거요.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말이오."

놀랍게도 그가 그렇게 허공에 손가락을 찍을 때마다 그 손가락 끝에서 작은 빛이 하나씩 터졌다. 나는 믿어지지 않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어떤 전기 같은 것이 찌릿찌릿하고 내 몸에 흘러들었다.

동화속에 나오는 늙은 마술사처럼, 잔뜩 주름진 얼굴에 허리마저 구부정한 그 사두는 다시금 손가락 끝으로 내 가슴팍에 빛 하나를 터트리며 말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시오. 당신 가슴속에도 빛이 있소. 그 빛이 바로 신이오. 그 빛을 발견한다면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거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단네바드, 바후트 단네바드(대단히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나는 길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바라나시가 왜 '빛의 도시'인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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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류시화 님의 '지구별 여행자'라는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길지 않은 글이라 옮겨 보았습니다.

무척 감동스런 이야기이지만,

그런데 실은 우리 육임에도 이런 사두가 많이 계십니다.

할아버지와 방주님은 물론이고, 많은 사범님들과 선배님들, 그리고 우리 3기 동기님들에도 많이 계신 것을 매주 토요일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인도에 가지 않고도 토요일마다 금정산에서 많은 사두들을 만나서 좋습니다.

그래서 더욱 육임을 사랑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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