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글마당

 >  공개수련  >  자유글마당

번호 : 298 작성일: 작성자: 전윤주 / 조회 1,726
차문화 산책

헉!
이게 뭐야?
여기가 차문화 사이트도 아니고.......

 

ㅋㅋㅋ

 

김봉건과 함께하는 차문화 산책 <5> 차 문화 역사

명·청대에 가루대신 찻잎 원형 보존한 '산차'가 만들어져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대부분의 차는 명·청 시기에 제작되었다. 사진제공=사진가 이경순
중국의 명·청(明淸) 시기는 차생활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문화가 되었고 또한 차의 제조법이나 우려 마시는 방식에 있어서도 크게 변화한 시기였다. 우선 제다의 방법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는데,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육대차류(六大茶類)가 대거 이 시기에 확립되었다.

육대차류란 녹차·청차·홍차·백차· 황차·흑차류이다. 차나무에서 갓 딴 찻잎에는 폴리페놀 옥시다제(Polyphenol oxidase)라는 산화효소가 들어있어서 이것을 그냥 두면 잎이 누렇게 황갈색으로 변질된다. 그러므로 열로 처리하여 산화효소의 작용을 막아야 하는데 이를 살청(殺靑)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살청을 언제 하느냐에 따라서, 다시 말하면 자연적인 산화와 또 그에 의한 전색(轉色)을 어느 시기에 중단시키느냐에 의해 각각 다른 종류의 차가 된다. 뿐만 아니라 살청을 가마에 쪄서 하느냐, 솥에 덖어서 하느냐, 햇볕에 말려서 하느냐, 그냥 시들리기를 하느냐에 따라 차는 각각 다른 맛을 내게 되고, 또 그 중간중간에 어떤 인공적인 조작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차의 맛은 천차만별이 되어 수많은 차의 종류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상해문화출판사에서 1992년에 초간되어 2002년에 15차 인쇄된 '중국차경(中國茶經)'에 보면 녹차류 138종, 홍차류 11종, 청차류 16종, 백차류 4종, 황차류 10종, 흑차류 5종의 명차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에서 대부분의 차들이 바로 이 명·청시기에 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차의 형태 또한 보이차나 천량차와 같은 흑차류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당·송대의 떡차와 같은 모양이 아니라 잎의 모양을 일그러뜨리지 않고 원래의 모양을 온전히 갖춘 산차(散茶)로 제작되어 제다의 방법에서 확연한 변화를 가져왔다. 당연히 차를 우려 마시는 방법 또한 변화되어 당·송대의 자차법이나 점차법과 같이 떡차를 갈아 물에 타서 모두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산차를 끓는 물에 넣어 진액만 우려마시고 찌꺼기는 버리는 포차(泡茶)의 방식으로 바뀌었다. 찌꺼기라고는 하더라도 아직 차의 유효성분이 상당량 남아 있는데도 이를 버린다는 것은 이 시기에 와서 차가 매우 흔한 식물(食物)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증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법의 변화와 일관성을 단위로 하여 명·청대를 한 시대로 구분하였지만 명과 청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조대(朝代)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청 양대의 차문화의 특성은 대개 질박(質朴)과 고졸(古拙)을 숭상하였다는 데에 공통성이 있다.

그 첫 번째 특성은 역시 차의 제조 방식에 있다. 이 시기에 와서 차의 종류가 현저히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산차의 형태로 만들어 찻잎의 질박한 자연성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당·송대의 떡차는 찻잎을 쪄서 방아에 넣고 찧어 그 형체가 완전히 문드러졌고 이것을 다시 본에 넣어 원반 형태나 벽돌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먹을 때도 맷돌에 갈아서 체에 쳐 완전히 가루를 만들어 물에 타서 마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다른 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특성은 차를 다루는 도구에서 나타났다. 명대에 발명되어 청대까지 휩쓴 자사(紫砂) 다기들은 이 시기의 차문화를 대표하는 그릇이다. 자사 다구들은 돌을 빻아 가루 내어 이것으로 다기를 빚어 고온에서 구워 만든 것인데, 그 단단하기가 돌과 같았으며 유약도 바르지 않은 이 다기들은 한결같이 고졸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이 자사의 다구로 산차를 우리면 비록 당대의 두보(杜甫)가 말한 "금주전자 기울여 옥잔에 차 따르니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누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 아취(雅趣)는 실로 높은 곳으로 흘러 차라리 속됨을 면하는 것이다.

명말 숭정(崇禎) 연간에 주고기(周高起)가 쓴 '양선명호계(陽羨茗壺系)'란 책에 "명인(名人)이 제작한 자사 차호(茶壺)는 그 무게가 불과 몇 냥에 지나지 않지만 가치는 금 일이십 냥에 해당하니 이는 흙으로 하여금 능히 황금과 그 값을 다투게 한 것이다"고 한 것을 보면 명·청대의 차인들의 안목이 얼마나 비범하였던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조선조의 산림유(山林儒)들이나 선승들의 차생활이나 일본의 '와비' 차풍은 이 명·청대의 차풍과 함께 또 한 시대의 동양문화의 특성을 이루었던 것이다.

동의대 철학·윤리문화학과 연구교수
  입력: 2008.04.22 20:40
ⓒ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수정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
제목 작성자 작성일

차 달이기_김봉건과 함께하는 차문화 산책 [2]

전윤주 2008/06/05

차의 보건기능 02 [1]

전윤주 2008/06/05

플라톤 '향연'

전윤주 2008/06/05

젊은 연인들... [4]

전윤주 2008/06/04

지식의 한계 [2]

이기현 2008/06/02

Massachusetts - BeeGees [2]

김수청 2008/05/25

사랑하라는 手印 [1]

김영복 2008/05/13

차의 보건기능 [1]

전윤주 2008/05/08

차문화 산책 [1]

전윤주 2008/05/08

진정한스승, 홀로됨 [2]

김영복 2008/05/08

명상과 자각 [1]

김영복 2008/05/08

犬公母情

김영복 2008/05/07

살아 있는 부처 [2]

김영복 2008/05/07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1]

김영복 2008/05/05

Alessandra Ferri, Sting music vi... [3]

김봉건 2008/04/30

化蝶(동영상) [4]

김봉건 2008/04/30

오해 [1]

전윤주 2008/04/29
Q&A바로가기 수련체험담 수련과정(커리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