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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어떤 사상가인가?
오늘날 프로이트(1856~1939)라는 이름은 지식인 계층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친근한 고유명사가 되었다. 그의 개념들 중 상당수는 유행어가 되거나 우리 일상 대화나 표현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우리는 흔히 술자리에서 하는 술주정을 억눌려져 있던 무의식의 표현이라고 쉽게 말하고, 엉겁결에 상황과 맞지 않는 말을 내뱉을 때는 무엇인가 억압되어 있다가 튀어나온 것이라는 해석을 한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생활이나 대중문화에서 사용하는 정신분석, 무의식, 억압, 리비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과 같은 말은 이미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개념들을 정확하게 설명해보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머뭇거림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지난 2006년은 프로이트 탄생 150주년을 맞는 해였다. 그가 활동했던 독일 등에서는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 관한 각종 행사가 치러졌고, 여러 종류의 전기와 편지 모음집, 환자와 상담하던 기록 등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다. 이는 20세기의 지적 지형을 바꾸었던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칼 포퍼가 정신분석을 반증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비과학적이라는 결론 내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20세기에 프로이트의 작업은 적어도 과학적으로는 잊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21세기에는 프로이트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인지과학이나 신경과학에 정신과학 연구의 자리를 내어주었던 정신분석은 최근 이런 분야에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마크 솔름스나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에릭 칸델과 같은 과학자들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개념이나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았던 성이론 등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보건대 프로이트에게는 아직도 탐구해야 할 미지의 영역이 남아 있음에 틀림없다.
프로이트는 생존 시에 그의 제자들이나 학계로부터 많은 오해와 비난을 받아왔다. 가장 쓰라린 결과 중의 하나는 칼 융과의 결별일 것이다. 융은 아들러와 함께 프로이트가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제자였지만, 그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성욕으로 환원되는 것을 비판하면서 스승의 곁을 떠났다. 한편 프로이트 사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계승 작업이 이어지기도 했다. 20세기 중반 프로이트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자크 라깡(1901~1981)이라는 인물과 그의 저서 덕분이다. 라깡은 '프로이트에게로 돌아가자'는 선언 하에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재발견함으로써 정신분석학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사조에 맞추어 재해석하였다. 1970년대 말에 프로이트주의의 부활은 정신분석의 내부에서 일어났을 뿐 아니라, 인문학의 전 분야에서 진보적인 많은 지성인들과 연구자들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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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으면 논술이 술술 <2-1>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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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으면 논술이 술술 <2-2>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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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으면 논술이 술술 <2-4>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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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에 연재된 김승철 교수님의 글이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