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체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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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44 작성일: 작성자: 김지영 / 조회 630
시간이 머무는 곳, 나무와 六壬


삼릉에 갔다
. 요즘 들어 새로 생긴 버릇은 나에게 과제를 하나씩 내는 건데, 이번 주는 시간이 머무는 곳을 찾아라이다. 시간이 머무는 곳이 어딜까 골똘한 생각은 삼릉 소나무를 떠올렸다. 그 곳에 가면 시간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이른 아침 차 시동을 걸고 고속도로로 향하였다. 벚꽃은 이제 남쪽에서 하염없이 지려고 하는데,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남쪽에서 만개한 꽃이 북쪽으로 가면 어린 꽃잎이 된다. 차를 타면 한 시간이면 될 경주까지 벚꽃이 가는 데는 사나흘 걸린다. 부산에 내린 벚꽃 비는 경주에서 사나흘 후면 벚꽃 눈으로 내릴 것이다. 그리고 경주에서 활짝 핀 벚꽃은 또 북쪽 어디선가에서 사나흘 뒤에 만개할 것이다. 동물은, 또는 사람은 몸을 움직여서 이동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식물은 씨를 전파하여 종족을 퍼트린다. 부산의 벚꽃과 신의주의 벚꽃은 하나이다. 한반도의 벚꽃은 모두 하나이다. 시간이라는 가로등지기가 불을 밝히면 가로등불이 차례로 밝아지듯 만개한 벚꽃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달려간다.

(삼릉이 보이는 소나무)

경주 톨게이트를 지나 삼릉으로 꺽어지는 길목부터 하얀 벚꽃 터널이 이어진다. 아침의 삼릉에는 개나리 노란빛과 진달래 분홍빛이 얼기설기 엮어진 공간에 키 큰 소나무 사이로 햇살이 아른거리고, 여기저기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햇살을 잡아내느라 분주하다. 삼릉의 소나무는 아름답다. 보통 소나무는 웅장하거나 장대하거나 늠름한 기상을 자랑하는데, 삼릉의 소나무는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아름다움이 지나치면 슬픔이 된다. 삼릉 옆 경애왕릉을 지키는 소나무는 슬픈 고요를 간직하고 있었다.

(소나무 하나)

나는 소나무를 안았다. 바스락거리는 껍질 안쪽에는 단단한 육질이, 그리고 그 안에는 나이테가 있다. 한 아름에 들어오지 않는 소나무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언제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 한켜 한켜 나이테는 지나온 시간을 담고 있다. 촘촘한 나이테의 진동이 나에게 전해왔다. 나의 나이테는 어떤 모습일까. 나무는 지나온 시간을 나이테에 담고 있지만 사람은 살아온 시간을 어디에 저장해놓은 것일까. 깊어지는 주름에? 밋밋해지는 삶의 맛에? 더 이상 떨림을 주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에? 희망이 색바랜 인간에 대한 믿음에? 쇠약해져가는 육체에 대한 슬픈 감회에? 어릴 때의 생생한 감동을 기억하기도 벅찬 늙은 감성에? 부질없이 커지는 영생에 대한 믿음에?

(등산로)

사실 이런 감회는 사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소나무를 안고 있었을 때는 그냥 편안함이, 푸근함이, 기쁨이 밀려왔다. 시간은 그 곳에 있었고, 나는 시간 속에 있었다. 소나무와 함께 시간 속에 머무르기... 과제 끝.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위쪽으로 난 남산 등산로로 향했다. 평일 이른 아침인데도 등산객들은 삼삼오오 정답게 올라간다. 등산로는 나무판을 대어 만든 판자길이다. 등산로를 오르며 사람들은 올라가는데 몇 시간, 내려오는 데 몇 시간 하고 시간을 잰다. 시간은 지나고 흘러가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 시간 속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시간이라는 커다란 무빙워크를 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무빙워크 위에서 한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등산로 옆에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드문드문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등산로를 벗어나서 진달래 속으로 들어갔다. 때로는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는 무빙워크를 벗어나 그 옆에서 시간과 함께 머무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시간은 무빙워크가 아니니까.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는 게 아니니까.

(소나무)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간다는 고전적인 생각에 대항하여 숱한 사상가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해왔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원한 현재적 시간에 대해서 말했고, 후설은 모든 것이 정지된 순간의 순수의식을 이야기했고, 들뢰즈는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적 시간과는 다른 잠재적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의해 시간과 공간이 휘어진다고 말했고, 호킹은 시간이 사라지는 블랙홀을 이야기했으며, 웜홀 이론가들은 우주를 가로지르는 시간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어려운 철학자나 과학자를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도끼자루 썩는 신선의 시간놀음 이야기가 이미 친숙하다.

(개나리 진달래 소나무)

최근에 읽은 자료 중에서 감명깊은 시간 이야기는 발터 벤야민의 메시아적 시간이었다. 메시아는 물론 기독교의 개념이지만 메시아적 시간은 종교와는 관계없이 시간에 대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준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파열하는 순간으로서 현재를 제시한다. 지나가는 시간을 재는 시계와는 달리, 새로운 시간을 알리는 달력이 벤야민의 시간의 상징이다. 우리는 밋밋하게 흐르는 시간 가운데 가끔씩 반짝 빛나며 강렬하게 타오르는 순간을 목격한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의 존재가 새로운 국면을 맞아하는 느낌에 전율한다. 그리고는 그 순간들이 스러지고 다시 밋밋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사실 그 시간은 우리에게 남아서 우리의 나이테를 만든다. 우리의 나이테는 그 강렬했던 시간들의 기록인 것이다.

육임에서 시간은 단지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流留. 흐름이 머무는 곳. 示示示의 우주에서 瑞氣가 흘러가며 머물 때 그 흐름을 끌어당겨() 내 몸 안에 저장하는 것(畜氣). 흐름은 언제나 다르기에, 흐름이 머무는 순간은 매번 새로운 달력을 시작한다. 우리의 몸은 그렇게 매번 새롭게 의 나이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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