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체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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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794 작성일: 작성자: 전윤주 / 조회 643
호 흡

저번 5분 스피치에서 하고자 하는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하여 올려봅니다. 저번 5분 스피치에서는 이것 저것을 하였는데 이번에는 단 하나 호흡만을 위하여 정리하여 올립니다. 호흡에 대한 예도 들어 보고 했습니다만 단순하게 저의 생각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며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호흡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라고 생각합니다. 나고 자라면서 호흡이 끊긴다면 모든 것은 다 소용이 없습니다.

유위의 호흡과 무위의 호흡이 있고 무화의 호흡과 문화의 호흡이 있으며 화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형태가 있는 것을 유위라 하고 그 형태가 없는 것 같은 것을 무위라 하며 유위는 무화와 비슷하다고 할 수가 있으며 무위는 문화와 비슷하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유위는 그 형태가 있는 것이며 무화는 거칠고 무위는 그 형태가 없는 것 같으며 문화는 부드럽게 하는 것이 라고 생각합니다.


유위 = 무화 = 거침, 무위 = 문화 = 부드러움, 같지 않으나 다르지 않습니다.(말장난(?)은 아닌데...)


흔히 선도 수련에 대하여 사람들이 말을 하길 또는 책에 인용되기를 무위를 이야기 하고 문화를 이야기 합니다. 자신을 이야기하기에 최소한의 경계가 최소한의 깨달음이 있은 연유에 이야기를 하면서 과거의 수행에 대하여 처음 수련에 함에 있어서 보잘 것 없고 이제야 이야기 할 위치에 있어서 과거의 이야기를 하기에는 부끄러움이 따르기에 과거는 이야기 하지 않고 현재만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듣는 이가 옮겨 적기에 수련은 [이러이러하여야 한다]라고 적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의 이야기는 되어지지 않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럼 같지 않으나 같은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위 = 소리가 나는 호흡, 의식을 가짐, 호흡의 길이를 잼, 시계를 보고 초침을 헤아림, 호흡과 행공을 맞춤, 4*9=36과 4*6=24의 호흡(역에 따른 방법이라는 것 말고는 저도 잘 모릅니다.), 거친호흡

무위 = 소리가 없는 호흡, 의식을 버림, 호흡의 길이는 생각하지 않음, 시간이 가면 가고 오면 오겠지, 부드러운 호흡


짧은 지식으로 표현의 부족함을 메우기가 조금 힘들다고 생각합니다만 위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 호흡을 늘리는 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도수련에 있어서는 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호흡이 각 수련 단체들의 전통 등에 따라 방법 등이 조금씩 차이가 나지 않을까 생각하며 저희 육임신문은 유위에서 무위로의 좀 더 빠름 방법을 쓰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금 상이하지만 무협영화에서처럼 XX비결, XX경 등 특정적인 무엇인가를 위하여 목숨을 거는 행동이라든지 하는 것이 보다 강함을 보다 빠름을 위하여 일어나는 상황이 있듯이 육임신문의 내공역시 태계, 진계와 같은 것이 그러한 것이 아닐까 자꾸 추측이 되어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 수련방법에 비해서 선도수련은 반드시 깨친 스승님을 두고 행해야 한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육임신문에 매료되는 이유가 바로 할아버지로 인한 하수(수련에 따른 단어를 그대로 채택한 것이며 전수라고 하여도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를 좀 받을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 때문이기도 합니다.


흔히 선도수련을 장생에 묘에만 국한 된다고 하는 글도 보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중국은 노자를, 한국은 천부경을 그 근본의 뿌리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순을 거쳐 복희씨 로 공자로 이어지는 것 등에 의한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모든 것의 시작을 한 점에서 시작을 한 것이라고 보고 그 시작을 천부경이라 보아(저는 이를 취합니다.), 천부경으로 복희씨로 통한 역이 나왔으며 역으로부터 도덕경이 나올 수가 있었기에(일부 책 등에 괘사전과 주역 같은 유교 이야기 등의 조금씩 달리 표현되는 것도 있지만 그 책들에서 저는 이 부분을 채택합니다. 이는 호흡을 이야기 하기 위한 것이고 호흡이라는 맥만을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없고 장수만을 생각하고 그래서 단을 만드는 약을 복용하고 하는 문제점만을 이야기하는 이들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천문을 그리는 선기옥형이, 심오한 사상을 가진 81자와 500자의 도덕경이 과연 깨달음이 없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번 읽기만 한 [참동계천유]의 내용을 골자로 하여 다른 책들에서 일부 내용들을 참조하여 선도 수련이 왜 타 수련보다 문제점이 야기되어 질 수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단순히 저의 생각이며 만일 이 글을 보시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지도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허허벌판이 있습니다. 허허벌판에 혼자 서 있습니다. 한손에는 불과 한손에는 태울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허벌판입니다. 바람이 불수도 있고 비가 올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바람이 칩니다. 그러나 불을 붙여야만 합니다. 과연 잘 붙을까요? 혹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바람만 몰아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잘 붙을까요? 안 붙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불이 붙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람이 불을 꺼버릴 정도가 아닌 바람이 오히려 붙은 불에 바람작용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선도의 책에서는 이를 화후라고하기도 하고 이를 손풍이라 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의 강원도를, 장구한 역사의 산물들을 태운 사건을 아실 것입니다. 불을 붙이기 힘들어서 그렇지 붙고 나면 불을 끄기는 더 힘듭니다.  다음 또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꽉 막힌 부엌이 있습니다. 들어갈 문 하나가 고작 통로입니다. 그런데 그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문을 닫습니다. 역시 한손에는 불과 한손에는 태울 것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문 하나를 닫음으로써 꽉 막힌 부엌입니다. 바람이 불어도 다 막아 줄 수가 있으며 비가와도 다 막아 줄 수가 있습니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칩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자 위에 예도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예를 든 것입니다. 여기서는 비바람이 계속 몰아치도록 하겠습니다. 불이 안 붙을까요? 잘 붙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불은 잘 붙었는데 문이 꽉 막힌 곳에서 과연 얼마나 더 잘 탈 수가 있겠습니까? 얼마나 더 태울 수가 있겠습니까? 아마 부엌의 크기만큼만 태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엌의 크기만큼 공기가 있다면 공기가 있는 만큼만 태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자, 그럼 이 두 가지를 가지고 하나로 합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먼저 불을 붙이기 좋은 부엌에서 시작을 합니다. 역시 문을 닫아두고 열심히 태웁니다. 점점 더 타오르면 벽에 구멍을 하나 냅니다. 문을 열어도 되겠지만 비바람이 몹시 치고 있고 지금 시점에서는 문을 열면 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문은 그냥 닫아 두고 벽에 구멍을 하나 냅니다.

점점 타오를때 마다 조금씩 조금씩 구멍을 크게 하고 한 개씩 한 개씩 구멍을 또 냅니다. 어떻게 될까요? 꺼지지 말고 잘 타라고 하는 행동이 정말 올바르지 않습니까? 그러다 문을 확 열어 버립니다. 이제는 더 이상 비바람이 몰아쳐도 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벽의 구멍을 우리의 피부라고 생각합니다. 부엌을 우리의 몸이라 생각하고 벽의 구멍을 피부라 생각하면 참동계는 조금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결국 공부를 이야기 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럼 몇몇 제자로 비전되고 구전되는 우리의 육임신문은 , 스승과 제자가 믿음이 생겨서 스승으로부터 하수(전수)를 받을 수가 있을때까지는 천천히 조금씩 해나가야 할 것이라 봅니다.  그런 저는..., 할아버지께 하수를 받고 싶어집니다. 다른 곳도 많고 많은데 할아버지 옆에서 떡고물 하나 떨어지기를 바란다고나 할까요? 이는 비록 시작은 부엌에서 보잘것없이 시작을 하였지만 점점 타오르면서 구멍을 언제 얼마나 크게 내야 할까를 제가 하기보다는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서 또는 할아버지께서 그 구멍을 몇 개 내어주시면서 그 구멍으로 들어오는 비바람으로 제가 태우고 있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주신다면 그리고 할아버지처럼 부엌이 아닌 허허벌판에서 불을 태울 수가 있다면 그래서 저도 구멍이 하닌 벽을 하나 두 개 허물고 천장을 허물어서 할아버지처럼 허허벌판에서 태울 수가 있다면 하는 바램입니다. 하고자 하는 말의 전달이 잘 되었는지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때문에 타 공부인 요가, 명상 등의 공부가 선도보다 조금 느리고 덜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마음에서 마음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것이기에 다른 공부보다 비전되어 전수가 되고 다른 공부처럼 나는 이렇게 이만큼 깨쳤소 하고 나서지 않고 누군가의 시의 대목처럼 [그냥 웃지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상 짧은 생각을 글로 적어 보았습니다.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일단 올리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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